기타

딴지일보에서 퍼왔습니다... 공감가는 오락실 이야기..

체력덩이!! 2011. 4. 6. 00:10

[생활] 초등학생과 스타크래프트를!


2011.04.04.월요일

그냥불패 오모씨

 

 

봄바랑 살랑이는 일요일.

참 좋은 날씨입니다.

 

비온 뒤 갠 일요일 아침이면 비가 일으킨 먼지냄새를 맡으면 항상 설레입니다. 자유의 느낌이에요.

 

백수라 돈도 없고, 방구섞에 밖혀있는 타입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한바퀴 도니 여행온듯한 기분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나 척박한 문화수준의 본인은 30분만 자유가 있어도 지루해져 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맑은 하늘 부드러운 봄바람을 뒤로하고 결국 담배연기 자욱하고 어두컴컴한 소음의 피시방을  들어가게 되었네요.

 

그 옛날 한 20여년전 제가 초등학생일때는 일요일 아침 엄마를 졸라 500원 용돈을 받고 교회 가야 한다는 친구들을 꼬드겨 오락실에다 헌금을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락실이 집에서 멀어서 30분은 걸어야 했으나 가는 발걸음 발걸음이 두근거렸었죠.


시대는 바뀌어 오락실은 저물었고 대신 피시방이 일요일 초글링들의 낙원이 되었더군요. 어두침침한 피시방안이 초글링들로 바글바글 꽈악~ 들어차 있었습니다.

 

다른게임은 잘 할줄 모르고 오직 스타 외길인 저그유저로써 열심히 1:1대전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_-;;) 응?

 

제 액면가는 40에 가까운데 별거없는 제 플레이를 계~속 관전하던 토실한 이미지의 초등학생이 저에게 말을 거네요.

 

"아 아니 지금 가스가 없어서 안돼안돼 감염충 몇마리로 버틸꺼야."

 

초등학생은 계속 제 1:1에 관심을 나타내며 코치하듯 이야기를 거는데 초등학교 다닐때 이후로 초등학생과 이야기를 해본경험이 전무한 제가 오히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당황스럽더군요.

 

옆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제가 또 남의 눈을 의식을 좀 하는지라 왠지 멋지게 보이고픈맘에 (초등학생에게 말이죠 ㅠ.ㅠ) 어떻게든 손을 타닥타닥! 빠르게 움직여 보려고 노력도 해보고 그렇게 불꽃튀는 접전이 지속되다가 제 스타인생 최고의 플레이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상대 테란과의 중앙결전에서 바퀴와 저글링으로 상대병력을 싸들어가면서 감염충으로 진균번식 + 신경기생충 그리고 맹독충 자폭! 아아 이것은 곰티비에서 보던 프로게이머의 플레이!!

 

와아~

 

그 순간 초등학생의 눈이 빛나더군요.

 

응? 저 눈빛은?!
20여년전 감각이라 가물가물했지만 곧 떠올리고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국민학생시절 불광동 IQ오락실에서 학다리와 그림자 잡기를 멋지게 쓰던 형을 존경으로 바라보던 그것이네요.

 


"완전 대~에~박 짱이네요 님아"('님아' 라는걸 실제로 쓰는 세대더군요.)
 

소란스럽게 감탄에 감탄하는 초글링꼬마를 보니 이거 참 주위의 눈이 부끄러웠네요.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보잘것 없는 인생을 살고있어서 남에게 존경스런 눈빛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사람입니다. 초등학생 꼬마였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 신선하고 기분이 좋네요.


좋은 기분에 간식으로 핫바와 콜라를 사면서 꼬마것도 같이 사줬습니다. 꼬마가 부담스러울까봐 신경써서, 
 

"어어 야 저기 카운터에 245번이라고 말하고 핫바랑 콜라 니껏까지 집어와"
"와 그래도 되요?"


2000원에 멋지고 좋은 형이 되었고, 동심으로 돌아가 의기투합하여 5시간 가까이 둘이서 파티를 맺고 스타2 2:2를 즐겼습니다. 제가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닌데 알아주는 이가 옆에 있으니 왜 이렇게 스타가 잘되는지. 하는 게임마다 족족 승리니 꼬마는 저를 프로게이머쯤으로 바라보는 듯 싶었습니다.

 

중간에 꼬마가 엄마한테 혼난다고 집에 밥먹고 와야한다고 피시방을 나섰고,
 

"진짜빨리 왔죠. 달려왔어요 ㅎㅎ 헥헥"
 

10분여만에 숨을 헐떡이며 제 옆에 다시 앉는 모습을 보니 주인에게 충성하는 강아지 같기도 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꼬맹아 세상은 넓어... 오락 잘하는 걸로 멋진형이다 하고 존경할게 아냐...'
 

생각은 들었지만 말하진 않았습니다. 저도 그랬었고, 그럴 나이죠.

 

"우와 형 또 언제와요? 저 일요일이면 맨날 여기 있어요"


불과 몇시간 인연일 뿐인데 헤어지기를 무척 아쉬워 하는 꼬마를 보니 이거 어떻게 통닭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피시방을 나서며 초글링꼬마것까지 계산해줬고 마지막까지 멋진형으로 집에 왔습니다.

 
혹시나 20여년전 불광동 대신시장입구에 있던 IQ개발 오락실에서 <천지를 먹다 2>를 저와 같이하면서 끝판 깰 때까지 동전을 넣어주시던 아저씨 계십니까?(물론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었을 겁니다. 그나이 제 눈엔 다 아저씨였죠.)

 

이번에 빚을 갚았습니다. 이런 기분이셨군요.

 

P.S.마지막으로 꼬맹아, 형이라고 불러줘서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