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가거도 소개

[스크랩] 가거도(可居島)... (episode 3. 돗돔과 대물의 고장)

체력덩이!! 2010. 3. 7. 10:17

90년대의 어느 여름날, 사무실 부근에 있는 낚시점에서는 주말을 이용하여 2박 3일의 일정으로 가거도를 간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진도의 팽목 항에서 대절 선을 단독으로 이용하겠다는 편리함에 깜빡, 넘어가 버스에 오르게 되었지만 '남해 2호' 를 타고 만재도까지 가서 가거도에서 달려와 대기하고 있는 관광선으로 옮겨 탄다. 로 말이 바뀌었지만 그리 불편함도 없겠다 싶었는데 만재도에 도착해 보니 알록달록하리라 생각했던 관광선은 보이질 않았고 중국의 낡아빠진 정크선 같이 생긴 큼지막한 목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저 배는 아니겠지?’ 덩치는 제법 컸지만 추자의 야인이 70년대에 탔던 배였을까? 가거도에서도 퇴물로 취급되어 작업선으로나 사용하는 목선이었다. “자, 가거도의 명물로 오래전부터 목포까지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상선으로 겉모습은 좀 낡았어도 FRP 배와는 달리 부딪쳐도 깨지지 않는 안전한 배로 갈아탑시다.~~ “ 최고 속도라야 고작, 6노트 정도가 나오는 배였으니 만재도 에서도 족히 네댓 시간은 더 걸려야 했는데 다행히 좋은 날씨를 만나긴 했으나 너구리같은 낚시점 총무의 뱀 같은 혀 놀림에 이십여 명의 손님들은 선실도 없는 갑판위에서 하나, 둘씩 널브러지기 시작했고 낭만을 찾아 떠나왔을 여자 손님 두엇도 짙은 색의 잠자리 안경으로 핼쑥해진 얼굴을 감추고 버틸 만큼 버티다 지쳐서 흉한 자세와 몰골로 변하여 반쯤은 넋이 나간 모습이다 보니……. 안면 있던 선장과의 운 좋은 만남으로 간신히 세 명만이 들어앉을 수 있었던 조종실 그늘에서의 별 것 아닌 호강이 미안하기까지 했다. 팽목 항에서 오전 6시에 출발을 하여 11시간이 걸려서야 성건 여를 바라보는 모퉁이에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가거도가 초행인 초보 아닌 초보들은 너구리 낚시총무가 혼자서라도 관리가 편하도록 산탁개에서 깨밭 밑까지의 좁은 공간에 이십여 명을 줄을 지어 세워놓았으니 한밤중에도 시끌벅적한 것이 장날이 따로 없었다……. 누군가가 제법 굵은 장어를 걸었다며 뜰채를 가져오라는 소리도 들려왔고 좋은 포인트였지만 소음에 놀라 자취를 감추었을 볼락구경은 하지도 못했겠지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뜰채 없이도 고기를 건져낼 수 있다고 버스 안에서 큰소리를 치던 낯선 꾼이었다……. 얼마나 굵고 튼튼한 줄로 채비를 하였기에 번쩍~! 들어낼 수 있다고 했을까? 비교적 바깥쪽의 갯바위에 내렸었기에 조금물때였지만 흐르는 물에 채비가 올라탔는지 간간히 찌가 흘러갔는데 물 건너 나라에서 구해온 귀한 플라스틱 전자 찌는 표시된 6호를 넘어 10호 봉돌까지 매달아도 잔존부력이 남는 둔탁한 것이다 보니 자잘한 농어새끼나 전갱이 정도가 물고 늘어지면 움직임도 없는 괴상한 찌였다……. 제법 멀리 흘러갔다 싶어 다시 되감아 보면 감각도 없이 손바닥만 한 고기가 가끔씩 끌려 나왔기에 옆에 서있던 초보는 귀신같은 솜씨를 지녔다고 감탄을 하곤 했지만 어두운 밤이다 보니 ‘날름~!’ 내미는 혀는 보지도 못했는가보다……. ^^;; 물도 안가는 날에 농어낚시라니……. 가거도에서는 조금 때에 농어가 붙고 만재도 에서는 사리 물때에 농어가 움직인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가끔씩 쏠쏠한 크기의 농어가 걸려들기도 했지만 루어만 던지면 미터 급의 농어가 덤벼드는 외연도와는 느낌이 달랐다……. 힘들게 도착한 피곤함 때문인지 자정이 넘자 밀려오는 잠을 못 이기겠기에 잠시 눈을 붙여 보려고 군용 튜브에 담겨있는 치약 같은 모기약을 쥐어짜선 노출된 피부에 덕지덕지 발라 보았지만 괴상한 노린내와 기분 나쁜 끈적임이라니……. 새벽이 되자 제법 선선함을 느끼며 눈을 뜨면서 미끼통부터 더듬어 보았지만 한 마리 구경도 할 수 없었기에 일찌감치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구리같은 총무가 배를 타고 오며 철수하자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일찌감치 자리를 옮겨주려나 보다’ 기특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라디오 뉴스를 들어보니 갑자기 발생한 태풍이 속도를 더하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섬 주민과 상의를 했는데 어부들의 경험상, 철수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에 방파제 공사를 하는 1구로 옮겨 가서 마침, 운행하기 시작한 호화 여객선을 이용하여 급히 목포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태풍이냐?’ ‘이곳을 오려고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하루 만에 철수를 할 수는 없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나왔지만 날씨에 민감한 섬주민의 말을 듣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에 날이 밝는 대로 1구 쪽으로 몰려갔지만 갓 운행하기 시작한 여객선의 도착시간을 정확하게 모르다 보니 방파제 공사가 벌어진 1구 마을의 흙투성이 바닥에다 자리를 깔고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었는데 노느니 염불한다고 돌돔을 잡겠다고 가져온 비싼 지렁이를 끼워 발밑에 던져 놓으면 먹을 만한 크기의 우럭정도는 심심치 않게 낚을 수 있었다……. 가거도에 가서 비싼 홍지렁이만 끼워 던져 놓으면 가끔씩 물고 늘어지는 우럭이나 장어 같은 죽지 못해 안달이 난 잡고기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돌돔이나 참돔은 깔린 것이 깨알보다 많다고 허풍을 치던 너구리 총무의 말만 믿고 사람들마다 한 두키로씩 가져 온 홍무시가 그대로들 남다보니 버리느니 나한테나 주면 추자로 돌돔낚시를 갈 때 잘 쓰겠다고 그러모아 염장을 하니 쿨러 안이 그들먹해졌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거문도나 추자도를 다니는 것과 똑같아 보이는 물위를 미끄러져 다닌다는 호화 여객선이 모습을 보이자 섬의 배들이 모여들어 번갈아가며 머리를 들이밀고 사람들을 태워 날랐고 아리따운 아가씨 승무원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새 배에 깔린 카펫이 상하니 갯바위 신발을 벗어달라고 눈을 부라리기에 두 손가락에 걸어들고 빈자리를 찾아 목포로 향했던 생각이 난다……. 진도의 팽목 항에 세워 두었던 버스는 목포로 오라 연락을 해두었기에 목포항에 몰려있는 싸구려 식당에서 이른 저녁밥을 먹고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태풍이 북상하기에 주의보를 발령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와 고집을 피웠던 이들의 떨떠름한 얼굴과, 기고만장한 너구리 총무의 엇갈린 표정들이 재미가 있었을까? -_-…….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앞에 앉았던 너구리 총무가 뜰채 없이도 큰 고기를 낚는다던 꾼의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적당한 크기의 고기들이 걸려들었기에 그대로 들어 올렸지만 결국에는 낚싯대를 분질러 먹었고 더, 튼튼한 낚싯대를 꺼내 들며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는데……. “좀 전에는 약한 낚싯대를 사용하여 실수를 했지만 이젠 아무리 큰 고기라도 문제없어…….” 다른 초보들을 돌봐주느라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는 무슨 고기를 걸었는지 휨새가 제법이기에 쫓아가 보니 큼지막한 참돔이더란다……. 그냥 들어올리기에는 버겁고……. 뜰채는 없고……. 고기의 힘을 빼가며 버티고 있기에 큰소리를 쳤으니 알아서 하겠거니, 그냥, 돌아왔다가 한참 후에 또, 가보았더니 그 자세 그대로 있더란다……. 너구리 총무의 얼굴을 보더니 울상을 지으면서 다른 사람의 뜰채라도 빌려다가 도움을 줍시사, 고 사정을 하기에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큰기침을 하고 돌아섰다가 일부러 늦게 가보았더니 이미 고기는 힘이 빠진지가 오래 되었을 뿐 아니라 고기의 입만 물밖에 나오도록 들었다 놨다를 시간이 넘도록 반복을 했었는지 고기가 질식해서 꼿꼿하게 굳어서 죽어있었다니 이 또한 믿거나 말거나한 허풍스러운 말이었지만 너구리 총무의 가거도 경력도 무시할 것만은 아니었다……. 그도 유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가거도를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해를 넘기며 낚시를 한 경험이 있다 보니 가거도의 주민들까지도 잘 알고 있었는데 초입에 있는 깊숙한 동굴 속에 식량과 장비를 갖다놓고 며칠씩 낚시를 했었던가 보다. 장대에 사용할 마땅한 미끼라야 가거도 에서 구한 홍새우 밖에 없었기에 굵직하니 끼워 던져놓고는 지나가는 고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니 어디서, 대물들이 몰려 왔는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끝대를 보며 챔질을 하고보니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큰 감생이가 발밑까지는 순순히 끌려 나왔다간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서야 힘을 쓰기 시작했기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당겨보았으나 그만, 목줄이 끊어지고 말았단다……. 떨리는 손으로 급히 채비를 하여 또 한 마리의 새우를 꾀어 던졌고 또 발밑까지 어슬렁거리며 끌려 나왔다가는 코웃음을 치며 머리를 돌리더니 또 채비를 끊고 가버리기를 반복하다보니……. 궁리 끝에 원줄과 직접 묶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서야 한 마리를 간신히 끌어낼 수가 있었다는데 육십이 넘고, 칠십도 넘는, 팔짜급의 감성돔이었다니 평소에도 위인이 어딘가가 약간, 잘못된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중증에 도달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너구리가 오래 묵으면 둔갑술도 펼친다는 옛날이야기를 동화에서나 들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책가방은 던져두고 물가로만 다니며 고기잡이에만 몰두했었던 경력으로 몇몇 낚시점의 총무를 맡았던 경험이 있다하니 그저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가보다. 웃고 말았지만 매듭님만큼은 ‘믿어 주리라’ 생각했다며 정색을 하기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는데 다음에 가거도를 가면 꼭, 손가락보다 큰 홍새우를 사용해 보라기에 슬그머니 화제를 돌리고 말았지만 칠짜도 아닌 팔짜급 감생이가 한 마리도 아니고 열댓 마리나 떼 지어 들어와서 너구리와 함께 춤을 추며 놀아주었다니……. -_-;; 선장의 집에 방이 부족하여 부부가 사용하는 안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저녁 밥상이 들어왔기에 독한 위스키를 즐기는 선장과 함께 잔을 기울이다 보니 낡은 액자안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는데 한창때의 날씬했던 선장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커다란 돗돔을 끌어올리는 사진이었다. 누구에게서 큼지막한 수제 바늘을 하나 선사 받았기에 택택이 목선을 타고 간여 부근에서 통고등어를 미끼로 하여 던져 놓곤 간밤의 꿈이 무엇을 뜻할까? 더듬어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엇이 걸려들었는지 기타줄 보다 굵은 경심 줄이 손아귀 사이를 빠르게 빠져 나가며 손바닥에 상처를 내었는데 놈이 잠시 머뭇하는 사이에 재빠르게 낚싯줄을 뱃전에다 묶을 수가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것이 제멋대로 끌어당기는 데로 한동안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지쳤는가 싶어 살며시 잡아당겨보면 또 내달리기 시작하고...... 끝이 없는 싸움을 하다 보니 슬그머니 겁이 나기 시작하여 그만, 줄을 끊어 버릴까, 하던 중에 놈이 지쳤는지 끌려감이 멈춘 것 같기에 조심스레 당겨 보다가 드디어, 정체를 확인하게된 것이 바로 이 돗돔이었단다. ‘노인과 바다’에서 그러했듯이 상어 떼라도 덤비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며 배의 옆구리에 매달아 마을까지 끌고 와서야 주위의 도움을 받아 들어 올릴 수가 있었다는데 백만 원도 넘는 돈을 받아 들게 되어 장롱도 사고 양복도 한 벌 짓고……. 한동안 행복했었다며 눈이 가늘어 졌다……. “또 한 번 잡아보지?” “으이그……. 다시는 잡아보고 싶지 않소......” “그 자리가 어딘데?” “조상대대로 전해져 오는 비밀스런 포인튼데 한번 가보시려우?” “나도 꿈부터 먼저 꾸고.........^^:: 그리고 참~! 너구리총무 알죠?” “알다마다요.……. 오늘날, 가거도가 외지에 널리 알려진 것이 첫째는 유 선생님 덕이요……. 둘째는 너구리가 낚시점 총무를 하며 손님들을 모셔왔으니 유 선생님에 이어 그가 가거도의 둘째가는 은인이라면 은인일 게외다……. “ “칠짜를 넘어 팔짜 감성돔의 진실은??????” “글쎄요.......... 내 생전에 처음 보는 엄청난 크기의 감성돔을 낚아 들고 와 온 동내를 돌아다니며 고기에서 썩은 내가 나도록 며칠씩 자랑을 하고 다녔으니 동내사람들이 모두 보았는데 크긴, 엄청 큽디다......“ “글쎄……. 내 말은 그 감생이가 분명히 칠 짜요? 팔 짜요?” “....... 내가 가거도에서 태어나 큰 고기를 수 없이 봤지만 그렇게 큰 감생이는 처음 보았고 자 같은 것도 없어서 직접 재보지는 못했지만 눈대중이긴 하나 칠짜가 넘는다면 넘고 팔 짜도 넘는다면 넘는 큰놈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죠……. “ “참돔을 보고 감생이라 한건 아니고?” “내가 색맹도 아닌데 빨갛고 꺼먼 것도 모르것소?!........” “..................... -_-;; ” 가거도를 다니던 초기에야 선임자의 뒤만 따라서 흔들리는 뱃전을 부여잡고 불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보니 언제나 섬에 도착할지 시계만 들여다보노라 정신이 없었고 막상 도착하고 보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자마다 고기잡이에만 정신이 팔리다보니 주변을 제대로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거기가 거기 같고 마땅한 표시도 없다보니 매번, 물만 바라보고 오가기가 일쑤였다. 또 고기나 많이 낚았다면 모르겠지만 실력도 변변치 않았을 때였고 지금과 같은 상식도 없다보니 물때나 수온에는 신경도 쓰지 못했고 초기에는 장비조차도 시원치 않았던 것이 제대로 작동이나 될는지 의심스러운 예비군 훈련장에서나 쓰던 M-1 소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간 격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고기가 순진하고 겁이 없다보니 몇 마리씩 차례가 오곤 했다……. 1979년에 삼부토건에서 착공한 방파제 공사는 시작부터 난공사였다 보니 다음해에……. 또, 그 다음해에 가보아도 공사를 하기는 하는 건지? 진척도 없는 것 같았고 며칠 안 되는 일정에 고기잡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도 못했는데 해마다 조금씩 변해가긴 하는 것이 공사비가 제대로 나오긴 했었나 보다……. ^^;; 2000년도까지만 해도 접안할 곳이 없어 지금의 태도나 만재도 에서와 같이 물위에 여객선이 도착하여 떠 있기만 하면 작은 배들이 번갈아 뱃머리로 밀어가며 손님들이 타고 내리다 보면 몇 바퀴씩 제자리 돌기를 해야만 했는데 한두 해가 더 지난 2002년쯤이 되어서야 방파제에 여객선이 바로 접안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동중국해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기상 악화 시에 대피할 수 있고 어업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위하여 가거도의 방파제 공사를 확정하고는 10년의 공사기간과 330억 원의 공사비를 지원하기로 했으나 여러 차례의 태풍 피해로 공사 중인 방파제가 여러 번 손실되었다. 1986년 8월 28일에는 태풍 ‘베라’가 덮쳐 공사 중이었던 방파제 220미터가 유실되며 32톤짜리 테트라포드가 파도에 ‘붕~!’ 하니 떠 밀려와서는 지금의 까치슈퍼 앞마당에까지 날아와 떨어졌기에 놀란 섬 주민들이 급히 높은 곳으로 대피를 하는 일이 있었다는데 그때 직접 목격을 했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피식~!’ 웃고 말았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러했었다는 선장과 주민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으나 32톤짜리의 테트라포드가 그 먼 거리까지 날아갔다니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할 일이었다.……. 정말, 그러했기에 테트라포드의 크기를 32톤에서 64톤으로 규모를 2배 더 키워서 제작을 하게 되었겠지만 2000년 여름에 발생한 태풍(프라피룬)은 64톤짜리 테트라포드까지 들었다 놓는 놀라운 힘자랑을 하며 또 일부를 훼손시켰는데 입구에 있는 방파제의 형태가 일정치 않은 이상스런 모습으로 변하다보니 이번에는 100톤이 넘는 큐브형 테트라포드를 천개나 제작하여 덮어씌웠다는데 급하게 마무리를 하였는지 지나면서 보면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 깔끔하지 않게 공사가 끝난 것 같아 보이니 어느 건축가가 보면 크게 외칠 것이다……. (건축은 선이여, 선~~~~~!!!) (그러나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 한 물속에서의 건축공사는 예외일수밖에 없다....!!!!!) 64톤짜리 테트라포드 한 개의 제작비용이 740만 원 정도이고 108톤짜리 큐브 형은 1천만원정도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10년 예정의 공기가 30년으로 늘어나고 300억 원으로 시작했던 공사비도 1.300억 원이 더 들었다하니 참, 대단한 공사가 아닐 수 없다……. 초기에는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공사능력을 무시하고 무상으로 공사를 해주겠다는 제의를 했다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얼마동안의 사용권을 원하는 시꺼먼 속내를 감추고 한 말이었을 게다……. 초기에는 주로 장대만을 사용하다 보니 수심이 깊은 2구나 3구 마을 쪽에서 낚시가 이루어졌는데 배편도 시원치 않았거니와 공사로 시끄럽고 포인트도 적은 1구 마을보다 선호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찌낚시가 유행하면서 밑밥까지 퍼붓다보니 전유동이며 잠수 찌 같은 해괴하고 복잡한 낚시기법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잠간만 기다리다 보면 어디에선가 떼거리로 고기들이 몰려와 아수라장이 되곤 했으니 고기 반 물 반인 곳에서 고기를 못 낚았다면 많이 낚은 꾼 뒤를 따라가며 흘린 고기만 주워 담아도 쿨러 채우기는 일도 아니었다.……. 낚은 고기를 배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동내 할머니와 아줌마들이 커다란 함지박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어 가파른 길을 걸어 집으로 가져가서 손질을 했는데 나중에 찾아가기 편하도록 지느러미 한쪽을 자르거나 꼬리 쪽을 조금 잘라내는 등 나름대로 표시를 하여 슬레이트 지붕에 던져 놓기만 하면 꾸득하니 잘도 말랐으니 집에 갈 때는 마른 고기더미 속을 헤쳐서 자기 것만 찾아 가면 됐으니 어시장이 따로 없었다. 배들의 성능이 안 좋았다기 보다는 워낙 멀고 험한 곳이다 보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원치 않은 일기예보는 절반만 믿기도 의심스럽다보니 너울에 쓸린 인명사고도 들렸고 특수부대 출신의 별난 꾼이 로프를 이용하여 자리를 이동하다 불귀의 객이 되는 사고도 보았고 염소가 돌을 굴리는 자리이거나 바람에 돌이 떨어지는 위험한 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헬멧을 쓰고 찾는 용감한(?) 꾼도 심심치 않게 보이다보니 아무리 고기도 좋지만 목숨까지 걸고 하는 험악한 놀이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누? 배운 도둑질, 밤새우는지 모른다고 물속에 있는 귀신같기도 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와의 줄다리기가 주는 이상하고 별난 재미라니....... ^^;;;; 하지만 가거도라고 찾는 누구에게나 매번 호황의 재미가 보장되는 곳은 아니다보니 거리와 시간이 덜 걸리고 가까운 곳을 찾아 곁눈질도 해가면서 이리 저리 재보아 가며 연례행사처럼 찾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출처 : 낚시의 덫
글쓴이 : 찌매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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