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가거도 소개

[스크랩] 가거도(可居島)... (episode 1. 와호장룡 )

체력덩이!! 2010. 3. 7. 10:23

선배의 사무실에서 초면인 중년의 신사와 인사를 나눈 것이 1985년의 초여름이었다. “쏘가리며 붕어며 호수와 저수지의 민물낚시는 이제 그만하고 바다낚시를 해보렴.…….” “유 선생님이라고, 우리나라 제일의 낚시꾼이시다.......” 큰 키는 아니지만 다부진 몸매에 두툼한 손등……. 굵고 숱이 많은 머릿결의 사내는 얼굴가득 웃음을 머금고는 손을 내밀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낚시이야기가 먼저 쏟아져 나왔는데 가거도며, 태도며……. 들어보지도 못한 섬 이름들을 들먹이며 독도까지 낚시를 다녀왔다고 열을 올리는걸 보니 광기가 서린 꾼이 분명했다. 가거도라는 섬으로 안내를 해줄 터이니 시간이 되면 함께 가보자기에 얼떨결에 그러마고, 대답을 하고 말았지만 평생을 두고 후회할 수 도 있는 약속이란 것을 그때야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바다로 낚시를 가기만 한다면야 영광 앞바다에서 쯤에서는 굴비를 만들 수 있는 조기정도는 쉽게 잡아올 수 있을게라 생각했었고 실지로는 예전부터 가끔씩 다니기 시작한……. 첫눈이 내리면 낚이기 시작한다는 구룡포의 열기 잡이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그것도 민물낚시에서 그해의 시즌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납회와 함께 얼음낚시가 시작되기 전의 망중한을 이용하는 정도였다. 구룡포의 열기낚시라니........ 도대체 어느 얼치기의 말을 믿고 길을 나섰었나? 구룡포 항에서 배를 타고 잠시만 나가면 ‘긴따로’ 보다 맛있는 열기라는 생선이 미끼도 끼울 필요도 없이……. 카드채비라는 바늘이 열 개씩 달린 것을 드리우면 주렁주렁 달려 올라오기에 순식간에 쿨러 채우기는 일도 아니라고 했다……. 편하게 하자면 ‘오대양’ 이라는 전용 낚싯대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연을 날리는데 사용하는 실타래 같은 자새를 이용하여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는 말만 믿고 구룡포로 달려간 것이 1972년의 초겨울이었다. 간단히 먹자고한 아침식사에도 생선반찬이 여럿, 올라왔기에 바닷가 옆이다 보니 생선이 흔했나보다……. 포구에 있는 낚시점으로 몰려가니, 초보자들이 온 것을 눈치 채고 낚싯대를 사용한다면 카드채비 열 개의 바늘 중에서 절반 정도를 잘라내었고 자새로 하겠다면 엉킬 수가 있다며 고작, 두세 개를 달아주고는 묘한 웃음과 함께 이상한 눈빛으로 지긋이 쳐다보았는데 그때로서야 낚시점 영감님의 눈빛에서 엿본 의미를 알 수도 없었다.…….-_-? 엔진은 무슨 엔진? 노를 젓는 전마선을 타고 얼마만큼이나 나가서는 선장이랄 수도 없는 젊은 어부의 말을 따라 채비를 내리라면 내리고, 올리라면 올리다 보니 간간히, 흔한 붕어만한 크기의 열기라는 이름표를 단 바다고기가 물려 올라오긴 했으나 금세, 채비가 엉키고……. 꼬이고, 물 바닥에 추까지 걸리다 보니 뭉그적거리며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는데, 민물낚시회의 회장영감님이 고개를 들어 뭍을 바라보니 멀리 보이는 산과 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집과 건물들까지 물속에 잠겼다 드러났다. 반복하기에 그만, 겁이 나셨던 모양이다. 다급한 목소리로 사공에게 포구로 돌아갈 것을 부탁하였으나 이 정도의 파도에 무슨 겁을 그리 내느냐며 실없이 웃기만하니 그만, 화가 치솟았는지 사공의 뺨을 후려치곤, 호통을 쳤다……. “이 자식이 우리를 몽땅, 물귀신을 만들려고 하나? 빨리 안 나가?” 평상시에 얼굴을 찡그리거나 남에게 싫은 소리는커녕, 단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이 없었던 점잖은 분이었기에 모두들 깜짝 놀랐지만 내심, 속으로는 고기 잡다 무슨 일이라도 나서 무사히 살아서 나갈 수가 있을까 걱정들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부어오른 볼을 움켜쥔 사공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며 노를 젓기 시작했고 포구에 당도하여 사람들이 내리자마자 바다 가운데로 배를 몰아가며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는데 들으나마나 그쪽 사투리가 섞인 욕지거리였었을 게다.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정신을 차린 영감님이 무안했었던지 점심을 사겠다며 일행들을 근처의 식당으로 가자하시곤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먹는 것이 안전하고 편하겠다며 웃으셨다. 간단히 먹었던 아침식사에서도 여러 가지 생선반찬이 나왔었는데 술 한 잔을 곁들인 비싼 점심에서는 그때로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온갖 생선과 해산물이 곁들여져 부지런히 젓가락만 놀렸던 생각이 난다만 야채종류를 더 달라고 하면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상추 한 잎도 귀했던 시절과 계절 때문이었나 보다. 낚시회에 버스까지 기증하며 낚시인생을 즐겼던 분이었고 모두가 꺼리는 앞자리를 마다하지 않던 분이었는데 댐이나 저수지를 찾아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잠시 옮겨 가는 순간에는 유난히 겁을 내는 모습을 보이기에 모두가 이상하게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선친께 그 이야기를 드리니 껄, 껄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 더 이상했다. “그 분이 후처를 보신 게로구나.......^^” 죽은 본처의 귀신이 물속에서 손짓을 할 수도 있기에 후처를 본 사람들은 물을 무서워한다는 말씀이었다. (여보~~~~ 들어와~~ 들어와~~~~~! 어서 들어와~~~~!! ) (믿거나, 말거나……. -_-;;) 이렇게라도 대충 해본 열기낚시가 바다낚시로는 처음이었는데 좋은날만 만난다면 그래도 사먹는 것보다는 직접 잡는 것이 재미도 있고 수지도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둣가를 돌아보며, 그때로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바다 속에 이리도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호기심 천국이 따로 없었던가보다……. 서울 촌구석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샌님들 중에서 바다낚시를 가르쳐줄만한 사람도 없다 보니, 몇 번 해본 열기 낚시 외에는 고등어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으니 그물을 사용하는 어부들만이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게라 생각했고 바다가 멀기 만한 서울에서는 담수 낚시 쪽이 더, 편하고 만만했다……. 1979년, 부산을 가보니 서울촌놈으로서는 볼 기회조차 없었던 크고 작은 배들이 가득한 부산항의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는데 붉은색 밀가루 반죽으로 경단을 빚어 바늘에 끼워서 손바닥만 한 고기를 잡아내고 있는 두어 명의 꾼을 보자 (바다에서도 민물에서와 같이 떡밥으로 고기를 잡는구나?……. ) 호기심이 솟구쳤기에 지금 같으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간 큰 행동으로 막, 아가씨에서 마나님으로 승격한 처자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옆에 다가가 몇 마디를 건네 보다가 급기야는 낚싯대 한 대를 넘겨받아서 생전 처음 보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낚아보았는데 비닐봉지에는 '사상떡밥’ 이라는 상표가 적혀있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낚았던 고기는 전갱이나 고등어새끼였던 것 같았다……. 뒤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던 처자의 눈치를 볼 필요도 않은 것이 아직, 고양이도 되지 못했던 처자가 훗날, 호랑이로 변할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때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누가 말했을꼬? ^^;; 저수지나 수로보다는 규모가 큰, 댐 같은 곳엘 가야만 큰 붕어나 잉어를 낚을 수 있다며 댐 낚시에만 심취했던 선배가 한동안 안보이다가 나타났는데 뒷짐 진 손에는 못 보던 낚싯대가 들려있었고 릴이란 것이 달려 있었는데 이 양반이 바다낚시를 시작했던가보다……. 바닷바람에 그을린 거무튀튀한 피부에 어울리지도 않을 마도로스 모자까지 쓰고 있었는데 바다낚시가 생소했던 서울에서는 남대문 시장 부근에 가야만 ‘프린스’ 나 ‘내셔널’ 이란 바다낚시점이 두어 개 정도 있었고 민물낚시와 구분을 하기 위함인지 별스럽게 보였던 마도로스 모자를 쓰고는 바다낚시를 다닌다고 티를 내고 있었고, 마땅한 복장도 없었고 장비 또한 구하기도 귀했거니와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팔십년 대가 되어 이름만은 멋들어진 ‘산들바람’ 이라는 낭창하고 짧은 바다 낚싯대 두 대를 선배에게 받아들었기에 한번 사용을 해봐야겠다고 따라 나선 곳이 ‘마량’ 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바닷가 어디로, 분명히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다는 곳에 가보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도로사정이 시원치 않다보니 길에서 오가는 시간만 이틀이나 걸리는 정처 없는 여정이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발이 달린 지네사촌같이 생긴 바다 지렁이는 만지기도 껄끄러운, 징그럽다 못해 소름이 돋게끔 끔찍하게 생겼고 옆 사람만 잡아내던 바다고기는 감생이, 남정바리, 비드미라는 고기였는데 생긴 것이 비슷비슷한 것이, 크기만 약간씩 다르면 이름도 다른가보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며 쳐다보기만 했었다……. ^^;; 서울에서 바다를 찾는다는 것이 너무나 멀고 지루한 일정이다 보니 파로호, 소양호, 진양호, 운암 댐으로 며칠씩의 일정으로 댐 낚시를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그만, 바다낚시를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마량도 아니고, 여수나 목포, 완도도 아닌 이름조차 들어본 적도 없는 가거도라니……. 그 섬에 가기만하면 어시장에서나 보았던 값비싼 시뻘건 아까다이나, 농어를 원 없이 잡을 수 있고 우럭 같은 것은 버리기도 바쁘다는 믿을 수 없는……. 믿기지도 않는, 이상한 유혹에 넘어가, 팔뚝보다 굵어 보이고, 전봇대만큼 길고 무거운 장대를 장만하게 되었고 7자가 세 개가 붙은 쓰리쎄븐 상표의 쿨러를 어깨에 메고 유 선생님을 따라나서게 되었는데……. 목포에서 배를 타고 얼마 만에야 도착한 흑산도라는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 다음날 늦은 아침에야 가거도를 간다는 배에 오를 수가 있었는데 과연, 이렇게 먼 곳으로 힘들게 찾아 가야만 어시장에서 본, 알록달록한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을게라고 생각했으니 고기도 순진하고 사람도 순진했었나보다……. 섬사람에게 부탁해 두었다는 멸치를 한 양동이씩 받아들곤 배가 터졌거나 작은 것은 허리를 ‘뚝~!’ 꺾어 던져가며 밑밥으로 사용했고 싱싱하고 야물어 보이는 것만을 골라 끔찍하게도 큰, 바늘에 끼워 드리워 놓고는 ‘어떤 고기가 이런걸. 물어줄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을 하다간 심심치 않게 우럭이나 크지 않은 참돔과 농어가 물고 늘어지기도 했지만 헛챔질이라도 하다보면 굵고 무거운 낚싯대에 짓눌려 어깨가 빠지는 것 같은 통증과 팔뚝에서 소리 없이 들려오는 ‘우두둑’ 소리에 결코, 쉽지 않은 신선놀음도 오래 가지를 못했다……. 하루라도 시간을 벌어보려고 또 다른 바보들을 유혹하여 사람숫자가 제법 되면 대절 선을 타고 다니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어선수준의 시원치 않은 배들이었고 전화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가거도의 2구나 3구 마을을 번갈아 찾아가 숙식을 해결하려고 산꼭대기에 제비둥지처럼 달라붙은 집 마당에 들어서면 흐르는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는데 태백산 종주를 한들 이렇게 입에서 단내가 나지도 않을게고 물 사용과 이런저런 모든 것들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가거도라는 지겹도록 먼, 섬에 간다고 매번, 가마떼기로 고기를 잡아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것보다는 매번 겪어야 하는 심각한 멀미와 무시무시한 파도에 몇 번, 혼이 나서 넋이 빠지다 보니 바다낚시란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목숨부지가 최우선이었다......... 거금을 주고 장만한 전봇대만한 낚싯대를 그대로 처박아두자니 아깝고……. 매번, 가거도 같은 곳으로 칠성판을 지고 나서는 것 같은 고생길도 끔찍하여 유 선생님을 피하여 해남이나 진도근처의 비교적 가까운 곳을 찾아 가보니 이~따만한, 감성돔은 비늘 꽁뎅이도 구경하기가 힘들었지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크기에 따라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족속임이 분명한 남정바리나 비드미가 만만한 상대였었고 운 좋은 날이라도 걸려들어야 우럭이나, 작은 농어새끼, 장어 같은 것들로 쿨러의 밑바닥을 간신히 덮어오는 불쌍한 신세였으니 시꺼먼 소가죽 속을 넓게 펼친 미끼로 시장판에서 손쉽게 쿨러를 채워오기가 몇 번이었을까? -_-……. 어느 날, ‘여명(黎明)’ 이며 ‘난(蘭)’ 이라는 한들한들한 찌낚시대라는 것이 눈에 뜨였는데 이렇게 연약한 낚시대로 어떻게 큰 고기를 잡는단 말일까? 물 건너의 나라에서는 '크릴' 이라는 남극의 고래 밥을 뺏어와 사용해 보니 그 효능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돌고 퍼졌기에 일본을 오가는 보따리 장사를 통하여 구할 수 있었던 크릴이라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십 여 년 전의 돈으로도 한 장에 오천 원이나 했으니 넉넉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가끔씩 나보다도 더, 형편없는 초보가 낚시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면 거드름을 피워가며 몇 장의 크릴을 사오라 하여 양옆에 거금을 투자한 초보들을 세워놓고 ‘떡~!’ 하니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는, 녹아내린 크릴 중에서 좋아 보이는 것은 미끼로 사용하고 볼품없는 것은 세손가락을 이용하여 밑밥으로 흩뿌렸는데 고기들이 물위로까지 떠올라 반응하는 것이 눈으로도 보였으니 머나먼 남극에서 가로채온 고래 밥의 효능이 대단하기만 했다. 추자도의 어느 홈통 안에서도 크릴 두어 장을 통째로 던져 놓으면 그 효과가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추자의 밖미역섬에서 첫 번째의 육짜배기 감성돔을 낚았던 날도 크릴 미끼와 밑밥의 효과를 눈으로 볼 수가 있었는데 갑자기 물방향이 바뀌며 채비가 떠올랐고 눈으로 보이는 물속의 여에 바늘에 끼운 미끼와 밑밥이 달라붙으려는 것이 보였다. 바늘이 여에 걸릴까 싶어 채비를 거둬들이려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몇 마리의 감성돔 중 한 마리가 바늘에 달린 크릴을 공격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며 챔질을 하여 낚아내기도 하는 신기한 일도 겪었다. 90년대 초부터는 물 건너온 찌낚시 기법이 널리 퍼지면서 어느 정도 간이 부은 것도 적응이 되다보니 주걱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호기롭게 크릴을 밑밥으로 퍼 부어 가며 사용하는 낚시에도 곧, 익숙해졌고 고통스러운 멀미를 잊을만하면 가끔씩 찾아가던 가거도 에도 물위로 떠서 다니는 쾌속 여객선이 다니기 시작했기에 한결, 다니기가 편하게 되었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생겨난 사선을 이용하여도 4시간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마지막 물골을 넘을 때마다 뱃머리가 치올라가는 날을 만나면 등골이 으스스해지는 것이 아직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 분명하다. 1978년부터 가거도로 낚시를 다니기 시작한 유 선생님이 가거도를 외지로 널리 알려 주어, 편히 먹고 살게 되었고 오늘날의 가거도가 있게 되었다고 믿고 있는 섬사람들은 유 선생님이 가거도를 찾는다는 날에는 가거도의 은인(恩人)이 오신다며 섬 주민들 모두가 마중 나와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장대낚시만이 진정한(?) 낚시라고 생각하셨던 유 선생님이 건강상의 문제로 추자도로 안착을 하셨기에 힘든 장대낚시는 그만 고집하시고 편하고 고기도 쉽게 낚을 수 있는 찌낚시를 해보시라고 구멍 찌를 보내드리기도 했는데 찾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복잡해진 추자의 전성기도 끝이 났다 싶어 다른 곳의 섬들을 찾아다니다보니 유 선생님을 뵌 지가 오래되었는데 늦게서야 부음을 듣게 되었다. 20여권에 걸쳐 바다낚시 포인트를 상세히도 기록한 책을 보면, 지은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자도 한 곳만 찾아다녀도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전국에 있는 섬들의 정보라니....... 그러나 한번은 책에 적혀 있는 데로 외연도의 어느 부속 섬에 있다는 볼락과 돌돔 포인트를 찾아보았는데 한길도 넘지 않는 수심과 뻘 바닥인 곳으로 볼락은커녕, 변변한 고기 한 마리도 없는 곳이다보니 지루하게 하룻밤을 보내야했는데 책의 내용과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책에 적혀 있는 데로 저자가 그 많은 섬들을 모두 찾아가 직접 낚시를 해본 것은 아닌 것 같고 섬주민이나 어부들에게도 물어가며 집필을 했겠지만 그 정성과 노고에는 깊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가 없다. 그러고 보니 직접 포인트를 찾아 나섰던 외연도에서만도 십 수 년이 넘는 시간을 흐르는 물같이 지내 보냈구나....... 예전에는 아무도 찾아 가지 않았던, 그런 섬들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험한 바닷길을 찾아 간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었다. 처음 그 섬을 찾아간 이들이 수고한 노력 때문에 나중에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무수한 사람들이 그 섬들을 찾아가 편히 낚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전에는 몰랐던 그 섬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예전 같지 않게 변해가고 상처를 입어가고 있다는 것을 선임자들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다를 찾아가 보면 자연의 위대함은 물론, 그 속에서 삶의 진리도 깨닫게 된다. 바다는 우리가 사철 찾기가 좋은 곳이다. 바다에서도 계절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 섬의 산에서도 푸릇함을 볼 수가 있고, 볼락 같은 봄의 전령사를 만날 수 있는 봄과, 대물과의 한판 승부로 땀을 흘릴 수 있는 여름과,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가을과, 북서풍의 차가운 바람과 맞서 싸워보는 겨울도 있다. 바다는 계절에 따라 만날 때마다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기분에 따라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신세계를 만나보게 한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지만 늘, 새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바다에 가면 무엇을 만날 수가 있고 무엇을 볼 수가 있을까?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밖에 더 있겠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바다를 보면 물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수평선을 보고, 하늘을 보다가, 다시 거기에 맞닿아 있는 큰 바다를 보면 눈에 바다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마음속까지 바다를 가득, 담아볼 수 있다면 그곳을 떠나 올 때까지 바다를 느낄 수 있다. 꼭, 손으로 어루만지고 눈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 그 무엇을 말이다……. 고(告) 유 주 방님을 그리며.......

출처 : 낚시의 덫
글쓴이 : 찌매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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