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닮고싶은 이야기

닮고 싶은 이야기2

체력덩이!! 2011. 2. 12. 09:22

흐르는 강물처럼| ♣*****나의 귀농이야기
우드맨 조회 72 |추천 0 | 2003.10.05. 21:19 http://cafe.daum.net/refarm/5NF4/232
"우리는 좀 더 낭만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세상은 천국에
더 가까워진다" KBS1 수요기획 <아프칸으로 간 영화감독>

같이 미술공부를 하였고 지금은 평론가가 되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나보다 3천배쯤 훌륭하고 유명한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와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 -그는
4남매의 아빠다-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시쳇말로
우리는 "코드"가 맞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이들에게 뭐 대단하게 가르칠 생각이 없다는 둥
뭐가 되어야 행복하겠느냐는 둥 마치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공부 많이 안 시키고 마구 놀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처럼, 남들이 들으면 좀 수상한 그런 이야기를 우리들은
웃으면서 즐겁게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우리가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편 아니냐, 그렇듯이 우리아이들도 자유로운 삶을
찾아가도록 돕는 역할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지금은 일산에 있는 아파트 1층에 사는데 올 가을에
파주에 있는 출판문화단지로 이사를 간답니다. 하루는 이 소식을
듣고 위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여기도 좋은데 왜 이사를 가느냐고
묻더래요. 그래서 아이들을 좀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뛰어 놀게
하려고 그런다고 했더니 그 할머니께서 "아니, 그 집 애들처럼
노는 애들이 어디 있어? 뭘 더 놀려?" 하시더랍니다. 그 4남매는
지금도 모두 학원에 안 다니고 집에서 엄마와, 지들끼리 어울려
놀기만 하고 있거든요. 엄마도 좀 씩씩한 편입니다.....

저는 30대 중반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마흔 살부터는 제2의 인생을 살겠다. 이제까지는 선택의 여지없이
떠밀리다시피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선택하면서 살고싶다. 시골로 간다. 아이들에게도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는 서정적인 어린 시절을 경험하게 하고싶다.

그럴때면 친구들이 한결같은 말을 합니다. 아이들 교육은 어쩌려고
그러느냐, 철없는 아빠 때문에 선택권 없는 아이들이 시골구석에
틀어박히는 그런생활이 과연 니가 말하는 것처럼 좋기만 하겠느냐.
너의 즐거움을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키는거 아닌가, 나중에 어떤
원망을 들으려고 그러느냐..... 참다 못한 제가 이렇게 쏘아댑니다.
그럼 니들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여기서 살고 있는 거냐, 그렇게
아이들 교육에 지대한 관심이 있냐, 많은 고민 속에 다른 생각도
했지만 지금이 최선이라고 결론 내리고 그런 거냐고...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는 벌써부터 "아이들때문에"(?) 나의 선택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직은 아빠 엄마의 선택, 삶이
중심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선택한 환경에서, 때로는 부모가 처한
상황에서 자라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자기 길을 가려고 할 것이다.
나는 아빠로서 내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면 그뿐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을 보고 느끼고 영향받을 것이나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물론 부모라기보다는 아빠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긴 하지만...ㅎㅎ)

저와 비슷한 연배 되는 분들의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바램이 그랬고
시대적인 여건 또한 공부밖에 할 것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현실적인 목표는 대체로 "사"자가 뒤에 붙거나 은행원 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직업이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부모세대가 겪었던 고생을 자식에게는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절실한
부모의 심정, 또는 공부만이 그들의 "한"이었던 신분상승의 돌파구가
되리라는 막연한 희망이 우리에게 각인 되었고, 그런 무언의 압력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우리 스스로도 학과공부만 열심히 하면 모두가
중요하고도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벅찬 희망을 가지고 아침마다
열심히 도시락을 챙겨 학교로 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답게
잘살기 위해서" 라는 교육의 본질은 교무실 서랍 속에서나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때도 우린 많이 놀았고, 등교 길의 만원
버스와 TV에서 옥동자가 리메이크 하고있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그 메아리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6년 전 강원도 평창에 있는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고 거기서
살기로 작정했을 때 저의 계획은 자급할 정도의 농사와 자족할
정도의 문화비를 벌기 위해 땀흘리며, 다시 어떤 시스템 안에서
발버둥쳐야할 이유가 없으므로 편하게 취미로 그림을 그려서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 가끔 기증도 하고, 지역사회에 동화하여
거기서 맡겨진 작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오늘처럼
화창한 날이면 하교 길의 아이들을 마중 나가 가까운 개울에
데리고 가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저녁이면 작은 식탁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하루를 정리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
큰 목표를 세우지도, 무엇에 매달려 살지도 않을 것이며 등뒤로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아내와 나란히 한 뼘 밭에 앉아 있더라도
한가하게 때론 게으르다 할 정도로 천천히 살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일을 거들게 할 것이며, 그들이 성장하여
도시로 나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공부하기를 원하면 그렇게,
아니면 그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열리는 그런 삶을 선택한다해도
관여치 않을 것입니다. 나도 그러하였듯이 그들도 무엇이 되기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아버지를 닮은 삶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도 큰아들은 도시로 나가고 작은
아들(브래드 피트)는 고향에 남죠?

10여년 전부터 도시에서는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는 버틸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가끔 처가 집에 가느라 전에 살던 중계동
은행사거리라는 곳에 가면 사방 가득 내 걸린 학원간판 홍수에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대치동 목동에 이어 세 번째랍니다. 뭐가
세 번째 인지 참.....이런문제를 재론하는 자체가 새삼스러울 정도
입니다만 이즈음에 만나는 친구나 후배들, 그의 아내들은 예전의
"소신"이기보다는 일정부분 "어쩔 수 없음"을 조금씩 고백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무모했던" 저의 선택을 부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키워보니 학교생활이나 사교육비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한때나마 몸을 담았던 제가 보기에도 이 문제는 쉽게
풀어지지 않는 견고한 "성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어버린 현실, 내 아이들 사교육을
위해 다른 아이들 사교육에 매달리는 "고리", 이 거대한 시스템은
이미 교육이란 범위를 넘어선 이익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개혁이란 명분으로 누군가 수술하려고 메스를 들이댄다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치게 될 정도로 비대해졌습니다(이 문제만으로도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다룰만한 사항이기에 여기서 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제 주변의 친구와 후배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예고나 외국어고, 과학고에 보내려고 무진장 고생들을
하고 있으며, 방학을 이용해 언어연수를 보내기도 하고 몇몇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물론 자신도
그러할 뿐만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보다 더 큰 목표와 꿈을 가지게
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사회적인 명성과
성취감을 원하고 또 그런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
길을 가야겠지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만 아이들의
학습능력이란 대부분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빼어난 능력은 어느 때건 자연스럽게 그 빛을 내비칠 것입니다.
어떤 방향에서 보는 일반적인 사회구조는 피라미드와 비교합니다.
(다단계 판매 아니고요) 다소 거시기한 표현이지만 그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아이들을 정조준 한다고 모두가 안착할 수는 없겠지요.
누구의 표현처럼 보장되지 않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것은 부모로서 너무 미안한 일
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너무 크게 갖지 않으면 부모도 아이들도 모두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소 젊다할 나이에 전원생활을
갈망하시는 분들이라면 저의 이런 생각에 얼마간은 공감하시리라는
기대를 갖는다면 저의 지나친 욕심일까요.

어제 밤에 우연히 신동건아나운서가 안철수연구소장과 대담하는
프로를 중간에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익히 알던 터이건만
초지일관, 시종일관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미 컴퓨터백신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어도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때론
어린아이처럼 수줍어하며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소신을 밝히는 모습은 볼수록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안철수는 안철수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내 아이들은
그들만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며 잠자는 아이들을 차례로 품어봅니다.

주로 이런 생각에 빠져 살다보니 보시다시피 글을 써도 항상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의 이런
저런 이야기에 공감을 표현하는 분들이 있어 용기를 내고 계속해서
이렇게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과욕을 부렸나 봅니다. 정리가 잘 안 되는군요. 몇 번으로 나누어
이야기해야 할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보았더니 주제가 오락가락
하네요. 권보드래 라는 분이 어떤 매체에 쓴 서평의 일부를 아래에
붙입니다. 아, 책은 <월든>이구요.....

행복하십시오.

"종종 서울을 벗어날 것을 꿈꾼다. 드디어 아파트 거주인구가 전
인구의 50%를 돌파했다니, 이런 상상이야 이제 거의 보편적인
것일지 모른다. 멀리는 말고… 서울서 한두 시간 떨어진 데 소박한
흙집을 짓고… 고요히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며…이웃집 품팔이도
하고 그 곳 생활을 배운다면… 가끔 스치는 이런 공상을 방해하는
것은 굳이 ‘서울서 한두 시간 떨어진 데’를 찾는 알량한 타협에
대한 자의식이 아니다. 다수의 삶이 여전히 도시에 매여 있는데
혼자 달랑 탈출을 꿈꿀 순 없다는 자각도 아니다. 서울이라는
중심 혹은 보편을 벗어나도 괜찮을까 하는 근심, 교통이나 문화
시설이 빈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자녀 교육, 이웃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실제로 부딪히면 땡볕 아래 한나절 나앉아 보고는 다리가 쑤시네
얼굴이 타네 하며 징징거릴지 모르지만, 홀가분한 공상 속에서야
이런저런 게 큰 문제는 아니다. 밥벌이 걱정도 일단 팽개쳐 둘
수 있다. 공상은 땅을 흥정하고 집을 설계하는, 딱 그 자리에서
먼저 막혀 버린다. 배수로와 전기시설은 어떻게 하지? 난방은
어떻게 해결하나 어어, 그러고 보니 난 풀 한 포기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고 호미자루 하나 제대로 쥘 줄 몰라. 못 하나 못 박는 건
부부가 꼭 닮았지…
.................................... 저 월든 호숫가가 부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리는 오래 전부터 자본주의의 분업체계 속에 들어와 있고, 무작정
회귀를 꿈꿀 수도 없을 것 같다. 끝끝내 놓을 수 없는 새로운 삶에의
기대, 그러나 이건 어디서 시작되어야 할까?"

http://www.cafe.daum.net/ewoodman

행복한 집짓기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마당 - 맨땅과 잔디
경사지에 집짓기
변소,목욕실, 달의실
하늘을 나는 수영장
집은 얼마나 크면 좋을까요
돌담, 어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