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닮고싶은 이야기

인정승천(人定乘天) - 이상직 회장님.

체력덩이!! 2012. 1. 10. 18:59

 

몇일전 SBS 소통 관련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된 이스타 항공 이상직 회장님.

 

왜그런지 젊은시절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들이 가슴속에 희망이 되어 준다.

 

내가 가거도를 처음 갔을때... 내 눈에 비친 그곳 속에 열심히 살던 사람들...

인생에 시간이 지났을때 나도 조금이나마 닮아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 그리던 모습들..

 

이분 역시 그런 희망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내 현실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시작해 보자......

 

[신년기획]19대 총선 전북의 미래를 만나다…⑦맨발에서 하늘 나는 CEO된 '이상직'
    기사등록 일시 [2012-01-10 10:13:50]
【전주=뉴시스】유영수 기자 = 통함민주당 전북 전주완산을 이상직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9일 전주시 완산구 이마트 맞은편 선거사무소에서 뉴시스 전북취재본부와 인터뷰를 갖고 이스타항공 설립 등 기업인으로 성장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yu0014@newsis.com 2012-01-10

30분완성 명품 쌍커플40~70만원

가출 소년에서 이스타항공 그룹 40대 CEO
'사농공상' 인식 짙은 전주서 '상'출신 도전
전북 아들 딸 100여 명 항공사에 채용

【전주=뉴시스】정리/유영수 기자 = 이스타항공 그룹 이상직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19대 총선에서 고향인 전주완산을 지역구에 도전장을 냈다. 4년 전 도전했다가 쓴맛을 본 경험도 있다. 10대 가출 소년에서 40대 중견그룹 CEO가 된 이 회장의 정치적 견해와 인생 역경, 그리고 포부를 들었다. <편집자주>

-왜 국회의원이 되려 하나

"큰 틀로 보면 두 가지 측면이다. 지역적 측면과 국가적 차원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전북이 조선시대 3대 도시에서 해방 후 6대 도시 영광을 누리다가 지금은 30대 도시 밖으로 밀려났다. 60년 역사를 보면 덕망있고 능력있고 훌륭한 오피니언 리더도 많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경제적 리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 총생산에서 전북은 충청도와 강원도보다도 못해 전국 최저 수준이다. 경제 성적표만 보면 그렇다. 경제인으로서 안타깝다. 이 지역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대학 졸업한 젊은이들이 바로 취직할 수 있는 기업을 많이 만들고자 하는 열정 때문에 시작했다

국가적으로 볼 때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다. 그런데 1% 대기업이 모든 경제적 부와 명예를 소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99운동'(We are the 99 movement)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답보 상태다. 10년 월급쟁이를 하고 중견기업 CEO가 된 입장에서 '1% 대기업을 위한 사회'는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본다. 중소기업이 잘돼야 고용창출이 되고 고용을 통한 현실적인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 99%가 잘 먹고 잘 사는 시스템을 입안하고 실현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다."

-이상직이 이런 문제에 왜 적임자인가

"정치가 사회, 경제, 문화, 체육을 주도한다. 정치가 필요하다. 아무리 정치에 실망하더라도 결국 정치가 주도한다. 현재 국회의원 299명 중에 여야 구분할 필요 없이 99%에 속한 중소기업을 경영해 봤거나 실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나는 봉급생활자로 세계 경제를 읽고 산업의 미래성장 가능성을 진단하고 실물 경제 속에서 10년간 공부한 사람이다. 이것을 토대로 중소기업을 10년 넘게 운영했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스타항공 그룹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했고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블랙홀처럼 권력과 부가 1%에 쏠리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국가 비전이 없다. 국회의원 299명 중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경험을 가진 자가 없다."

-실전 경력을 이야기하는데 이를 점검해보자

"초등학교 때는 둘째 형 밑에서 자랐다. 야쿠르트 배달하는 누나 밑에서도 자랐다. 취직해야 결혼도 하고 집안도 일으킨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증권에 취직해 10년 동안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를 했다. 매년 '톱 5'안에 들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대학 생활 때는 아르바이트로 푸시맨(만원 지하철 승차 도우미)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물도 날랐다. 등록금과 생활 비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일상적인 데모엔 참여했지만 주도하진 못했다. 한번은 아르바이트로 100만원을 모아 자취방을 구하려 했는데 이를 포기하고 한겨레신문에 전액을 출연하기도 했다. 등록금이 60만원 할 때니까 나로서는 엄청난 결단이었다."

-직장 생활 중에 회사를 인수했나

"현대증권 10년 동안 세계 경제와 한국경제의 산업과 미래 전망을 다 공부했다. 실물 경제를 공부했다. 실전 경험도 했다. 이 경험을 가지고 어떤 회사는 망하고 어떤 회사가 성장하는지 나름대로 공부했다. 그러다 2001년 이스타항공 그룹의 모기업인 KIC라는 제조업체를 인수했다. 그 회사는 40년이 되었다. 오너가 큰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많은 시간 경영수업을 시켰음에도 경영권을 나에게 넘겼다. 조건은 단순했다. 회사 간판만 지키라는 것이었다. 이 KIC가 모태가 돼 44년 된 삼양감속기 회사를 인수했다. 그 회사 역시 오너가 아들에게 주지 않고 간판 유지 조건으로 나에게 넘겼다. 사실 인수보다는 경영을 맡아달라고 해서 맡았다. 그 뒤 10년 동안 외형과 이익, 종업원 숫자 등 모든 면에서 회사를 10배 이상 키웠다."

-오너들이 이상직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 미래를 보는 눈, 경영의 눈을 본 것 같다. 세계 무역의 흐름을 읽고 산업 동향을 분석하고 그리고 미래를 진단하는 것을 눈여겨 본 것 같다."

-이스타항공은 인수가 아닌 창업이었다

"중소기업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 미래 성장을 보고 이스타항공을 창립했다. KIC와 삼양감속기 등 관계사들이 참여했다. 출범할 당시 대한항공과 아시아가 독점한 항공 시장에서 저비용 항공의 시장점유율은 8%에 불과했다. 이 시장에 이스타항공이 진입하면서 2012년 현재 점유율이 50%가 넘었다. 이제 국민 2명 중 1 명이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한다. 항공시장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이 시점에서 경영 노하우를 듣자

"두 가지다. 온리원(Only one) 정책과 소통이다. 중소기업 오래되면 중견기업이 된다. 크고 작은 회사마다 잘하는 것이 꼭 하나씩 있다. 잘하는 것, 즉 강점을 살리는 것이 온리원 정책이다. 중국 속담에 '360행행행출장원'(360行行行出壯元)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업종마다 다 1등이라는 뜻이다. 360도 각자 방향으로 가면 누구나 일등이지만 한 방향으로 가면 일등에서 꼴찌까지 구분된다. 즉 모두 일등을 하자는 것이 온리원이다. 잘하는 것 하나를 찾는 것이다. 문화 등 아이템이든. 이렇게 성장했다."

-재미있는 비유다. 다음은 소통인가

"이스타항공 내부에 문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문화를 만들어냈다. 팀원의 역량을 모으고 끌어올리기 위해 지금까지 회의뿐만 아니라 희망콘서트, 체육대회, 워크숍 등을 통해 소통을 정착시켜왔다. 실례로 내가 맡을 때까지 KIC의 경우 포항, 인천, 광양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이 20~30년 근무하면서도 본사에 한번 안 오고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사 회의에 지방에서 올라오도록 했고 콘서트와 체육대회를 지역에서 번갈아가며 열었다. 전국 임직원들이 일 년에 수차례 전국을 돌며 만났다. 이스타가 취항한 이후 임원들에게 전 노선에 대해 부부동반 여행을 권장했고 임직원 부부가 동반하는 경영회의를 열고 있다."

【전주=뉴시스】유영수 기자 = 통함민주당 전북 전주완산을 이상직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9일 전주시 완산구 이마트 맞은편 선거사무소에서 뉴시스 전북취재본부와 인터뷰를 갖고 학창시절을 소개하고 있다. yu0014@newsis.com 2012-01-10

-결국 대기업화를 꾀하는가

"아니다. 이런 것을 가장 잘하는 곳이 독일이다. 단일 제품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 회사가 500개가 약간 넘는다. 그런데 독일이 400개 가량 보유하고 있다. 단일 시장 점유율로 세계 1등 하는 독일 회사는 5000개가 넘는다. 독일은 실용적으로 온리원 전략이다. 중소기업이 살아남아야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를 실천할 것이다."

-4년 전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본선에도 못 갔다

"당시 사람들이 정치 식견이란 면에서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한 것 같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를 하겠다는 이유가 앞에 말한 '99% 운동' 차원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을 실전에서 경험하고 느낀 국회의원이 없었다.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국회의원이 없었다. 그때도 나는 중소기업만 7년 이상 운영하고 있었다. 99%를 이야기하는데 통계만을 토대로 말만 하고 있다. 나는 준비는 다 됐었다."

-서울대 안철수 원장과 동갑으로 비교된다

"안철수 원장도 98년 적자기업일 때 김대중 시대가 도래했다. 벤처 시대를 열자며 2만5000기업을 키웠다. 모두 정치와 정책 때문이었다. 정책으로 물꼬를 텄다. 안 원장도 이 정책으로 빛을 봤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프로구단까지 만드는 엔씨소프트가 만들어졌고 안 원장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본 시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고, 그 불씨는 국가 지원 정책이었다. 돈이 아니다. 핵심은 정치가 이렇게 큰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보아왔고 어떻게 시스템이 돌아가는지도 알았다.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안 원장보다 내가 훨씬 고용도 많이 하고 매출도 크다."

-4년 전 국회의원직에 도전했었다. 당시 심정은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러니까 출마한 것은 아니다. 면접에서 탈락했는데 공심위에서 경영자를 받아줄 분위기가 안 된 것이다. 그러나 승복했다. 그때 내가 불출마하면서 도민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것과 새만금에서 큰일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선거에 떨어지면 지역을 떠나고 회의하고 비판하지만 나는 새로운 사업을 가지고 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지금 대한민국 하늘에 이스타 항공기가 날아다닌다. 이스타항공을 세우고 3년 연속 1등하고 있다. 새만금방조제 휴식 사업권을 획득해 시행하고 있다. 누가 이렇게 준비했나. 떨어진 후보 중에 이런 준비를 한 사람이 있나. 지금 해도 늦지 않다. 꼴찌인 전북이 더 잘 먹고 더 잘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이스타항공은 도내 대학생들의 꿈이 되고 있다

"이스타항공만 놓고 보면 직원이 40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전북의 아들, 딸들이 100명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전 직원의 25%를 우리 전북에 할당하고 있다.

-이런 성과에 대해 시민의 평가는

"굉장히 온도가 좋다, 따뜻하다. 실제 구상을 발표하고 이를 지키고 일자리 만들고 하는 성과 때문에 좋게 보는 것 같다. 세대교체와 청년실업 해소 등이 도민 바라는 염원 1순위다. 이를 실천해 왔다. 이 때문에 여론이 좋은 것 같다."

-화려한 중앙 정치 인맥을 자랑한다

"정치권은 다 친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스타항공뿐만 아니라 40년 넘는 회사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항공만 보더라도 제주, 청주, 군산, 인천지점이 있다. 해당 지역은 그쪽 지역 출신 인재를 뽑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지역 정치권과 인맥을 쌓았다.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면에서 볼 때 다 식구다."

-정동영 계보인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 최고는 고등학교 10년 선배다. 전라북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 비칠 수 있다. 선배이자 좋은 멘토다. 계보로 따지면 범인간계보다. 민주통합당 공동대표를 맡는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과도 막역한 사이다. 남부원 YMCA 사무총장과도 친분이 크다. 어떻게 보면 중소기업을 해서 노동계보라고도 할 수 있다."

-동대문시장 패션 신화를 창출했다는데

"우리 이스타항공 유니폼은 전태일 열사 동생인 전순옥 박사가 만들어줬다. 내가 직접 부탁한 것이다. 나는 현재 서울 동대문 시장에 있는 사단법인 MK(Made in Korea)패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고 회사 유니폼을 맡겼다. 이스타항공의 옷이 제일 예쁘다는 평을 받자 전 박사의 상품을 CITY은행과 한국전력의 자사 유니폼으로 계약했다. 이른바 동대문 상표가 메이저 그룹에 유니폼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재래시장 처지에서 볼 때 대단한 성과다. 아마도 이런 이유도 ‘동대문 시장 활성맨’이란 말이 나오는 것 같다.

큰 기업 유니폼을 맡으면 당장 10명 정도 고용창출이 일어난다. 아울러 하도급업체도 활성화된다. 그러면 시장의 소비도 살아난다. 다 이런 것들이 풀뿌리 동반성장이다. 작년 현대차가 8조 이익을 낳았는데 협력업체는 물가 상승률도 안 되는 이익만 가져갔다. 협력업체가 죽어가는 이유다. 동대문 시장을 보고 경제를 배워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 경선 방식은 어떻게 보나

【전주=뉴시스】유영수 기자 = 통함민주당 전북 전주완산을 이상직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9일 전주시 완산구 이마트 맞은편 선거사무소에서 뉴시스 전북취재본부와 인터뷰를 갖고 국회의원 출마 동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yu0014@newsis.com 2012-01-10

"민주당도 한국노총도 마찬가지로 전제조건 없이, 계보정치 없이 오픈 프라임으로 경선하자고 말하고 있다. 국민과 시민이 후보를 선택하는, 인정받는 국민 경선제 정신으로 가야 한다. 외국도 실제 이런 추세다. 이번에도 결국 특정 계보와 특정 후보 위주로 흐르면 국민이 이번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통합 정신이 사상누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완산을'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주를 선택해야 했다. 김제원평에서 태어났다. 원평 금산초등학교를 6학년 초까지 다녔다. 원평과 완산을이 지역적으로 가장 밀접하다. 원평과 완산을은 행정구역만 다르지 같은 터다.

특히 전주와 김제, 완주, 새만금 쪽에는 뭔가 장기적인 새만금 프로젝트를 개발해야 한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적으로 전주 완산을이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주 완산을이 새만금과 통하고 공항과 통하지 않는가."

-지역적 지지 기반은 무엇인가

"지역 연고로 보면 전주와 김제 출신들이 지지할 것으로 본다. 김제로 출퇴근하시는 분들. 나이별로 보면 어르신들과 50대 이상으로 자녀 대학 졸업 후 취직 걱정하시는 분들이 지지하고 있다. 20∼30대 당사자들은 이스타항공에 취직한 친구도 많고 취직을 희망하는 친구도 많다. 또 청년 실업자들과 이들을 자녀로 둔 어르신들이 피부로 지지해 준다.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특강만 30∼40번 했다. 학생은 꿈이 있고 욕망이 있다.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월급쟁이를 거쳐 항공사 회장이 되기까지 과정을 그들에게 말해준다. 학생 때는 가출까지 하던 아이가 맨주먹으로 여기까지 온 부분에 공감한다. 주제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를 둔 부모들이 나를 통해 희망을 품는다. 온도가 좋고 따뜻하다."

-인생 좌우명은

"요즘 '잘하는 것 하나를 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사회에 나와 즐길 수 있는 것 하나, 앞서 말한 온리원을 강조한다. 오자서에 나오는 ‘인정승천’(人定乘天)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도 감복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가족이야기를 해보자

"큰 형 밑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현재 큰형이 전주에서 살고 있고 나이는 72살이다. 그리고 둘째 형은 69세다. 큰 형수하고 둘째 형이 교육계 출신이다. 대학 다닐 때 둘째 형이 서울에 있어 둘째 형 집에서 다녔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교육자 집안으로 교육 환경은 나쁘지 않았다. 경제적인 여건만 좋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가출도 해봤다. 익산에서 자장면집 주방 도우미도 해봤다. 이것이 방황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형의 지도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이런 자리에 본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형들에게 효도 잘하고 있다. 큰 형은 지금도 KIC부회장을 맡아 나를 도와주고 있다. 누나들은 부산으로 시집갔고 이모들은 대구에 살고 있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집안도 전국으로 흩어져 있다."

-가족 불행사가 있다고 들었다

"현재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에 있다. 아들은 둘이다. 큰 애는 미국 뉴욕 디자인 학교에 다니고 있고 작은 애는 중학교 1학년인데 골프를 하고 있다. 그 사이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역시 아들이었는데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집 사람이 친정에 갔다 오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둘째가 죽고 아내와 큰 애만 살았다. 이 충격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행히 셋째가 태어나 조금은 극복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상처가 크다. 이 후유증으로 아내와 큰애가 미국으로 갔다. 둘째도 골프를 배우겠다며 미국에 있다. 이 아픔과 슬픔, 상처를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이 상처는 당해본 사람만 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도 있지만 아내의 상처 치유와 휴식기가 필요해 미국에 가 있다."

-둘째 아들의 골프 기록이 화제가 되던데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므로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도록 했다. 둘째는 골프를 하겠다고 나서더니 초등학교 5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 타이틀을 땄다. 보통 아주 잘하는 아이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야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는데 둘째는 5학년 때 따낸 것이다. 이때부터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 공부선수가 아닌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것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박지성, 김연아, 박찬호 등 스포츠 스타도 5살부터 운동했다. 5살 때부터 온리원을 찾아준 것이다. 예체능도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데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온리원이 중요하다."

-부모 이야기가 빠졌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무작정 상경해 나전칠기 유통업으로 큰 회사를 일궜다. 아버지는 회사는 큰 형에게 물려주고 둘째 형은 고려대 교육대를 졸업시켜 교사로 만들었다. 그런데 큰 형이 망했다. 유명 가구가 나오는 시대 트렌드에 나전칠기가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 과정을 겪으며 큰형이 어려워졌고 그 탓에 전주로 내려왔는데 나는 이 사건으로 가출도 하고 방황도 했다. 이를 악물고 대학 3학년 때 정신차리고 공부했다."

-마지막 유권자에게 한마디

"새만금이 전북의 미래이자 희망이라 말하지만 말고 만들어 가야 한다. 전북에 맞는 온리원이 새만금이다. 함께 팀워크를 만들면 할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하늘길을 열었다. 전통문화의 도시, 교육의 도시, 영상 영화의 도시라는 콘텐츠가 보여주듯 에코 환경이 좋다. 앞으로는 경제문화의 시대로 바꾸는데 전주가 최적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다. 지금은 꼴등이지만 지금부터 함께 온리원 그림을 그리면 10년 후 1등을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다. 울산보다 잘 사는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 인구 8만의 조그마한 도시가 온리원을 살렸기 때문에 오늘날 울산이 됐다. 전북 사람도 많이 가 있다. 전북의 온리원 정책을 실현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전주로 몰려올 것이다. 함께 만들어 가자."

대담 / 심회무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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