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통나무 펜션/통나무 펜션이 되기 까지

통나무 집짓기 1 - 자금조달...

체력덩이!! 2012. 3. 9. 20:40
어머니에 병원 입원 소식과 맞물려 3월은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이 있었다. 



2월 내내 현장에서 고민을 해가며 집짓기만 몰돌히 생각하곤 했다.



경매로 90여평의 땅과 집을 얻었고 헌집을 헐어 컨테이너집을 놓고 싶었다. 태풍 콤파스에 자빠져 버린 사건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렵사리 목포에서 11톤 크레인을 불러 옮기려했지만

협소한 골목길에 컨테이너집 처마가 걸렸고 

그렇게 바랬던 옮기기는 실패했다.



흑산도에 온지 얼마되지도 않은터라 누구하나 도움받을길이 없었다. 일곱평 남짓 땅이 없어 처분할수 밖에 없는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그나마 놔두었던 자리도 일주도로 공사로 빨리치우라는 연락만 오고..

결국 내 생애 첫집을 반값도 못되는 가격에 팔아야만했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3일 사이에 250만원을 더 붙여 다른곳에 되팔았다 한다.



1월 목포 집수리가 끝나고

귀농 자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압해도 귀농담당자와 수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정작 중요한 자금 부분은

농협에서 지급을하는데

후불제란다.



집을 다 짓고 준공이후에 감정평가를 거쳐 담보 대출을 해준단다.

이자가 3%이고 5년 거취 10년 상환제도란다.



결정적인것은 40~45%만 지원을 해준다니 결론적으로 수급가능 자금이 없으면 시작할수도 끝낼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집짓기 꿈을 포기해야하나.. 많은 고심을 했다. 



벌어논 돈이라고는 벌써 올인한지 오래되었고 답안나오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집안처지도 뻔히 아는데 손벌릴수가 없었다.

그럴돈도 없지만..



있는 배. 땅. 집 담보 대출을 알아봤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배 같은경우는 크기가 작다고 수협에서 거절당했다.



누굴 원망할수도 없고 한없이 답답한 마음 그지없었다.



작년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즈음..

같이 일하던 형님이 별장을 지으려고 원목을 사다가 깍아둔 골조가 있었다.



그 형님의 땅이 예정대로 길 문제가 해결됬으면 진작 지어졌을 집인데 차일 피일 미뤄지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2월이 됬다.



내 이런상황을 알게된 형님은 여러 궁리끝에 미리 깍아둔 통나무집 두 채를 후불 조건으로 내주기로 한것이다. 어차피 놀려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감춘다.



내가 직접 가공한것은 아니였지만 우드맨님 수제자들이 지은 집이니....

그걸로도 만족했고 

너무나 갑자기 큰 것을 얻었다. 



그리고 흑산도에서

험한 인생 살지 말고 당당하게 기펴고 살라고..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때 가슴에서 울컥하는 그 무엇이 있더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무엇인가 다가왔다.



원래 원목은 빠짝 말려서 짓는것이 좋다고들 한다.

아직 세부 가공부터 마감까지 남은 공정이 많다. 

원목가공비는 그렇게 된다쳐도 아직 많은돈이 필요한데 구할길이 없었다.



그러던차에 어머님 입원소식에 서울로 상경을 했다. 



가방엔 그간 모아둔 집이며 땅이며 귀농자금 신청서류. 신용평가서 등등 도움될만한 서류를 챙겨서 올라간다. 



무슨 배짱이였는지 설계사무소에 개발행위 시작을 의뢰하고 입금을 시켰다.



집짓기가 대책없이 시작되었던것이다.

올라가는 버스에서 끝없이 다짐한다..



무슨일을 해서라도 만들어 올것이다.



여러 계획을 세웠다. 



예전 현대 정회장님처럼 100만분에1지도를 만들어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투자를 받을까...



계획된 자료는 꼭 필요했다.



마지막 직장 사장님이나 부장님을 찾아갈 생각도 했다.

까페에 도움을 청하고도 싶었고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면서 한없이 눈물만 나왔다.



아버지께 어쩔수 없이 말씀을 드려본다. 

빚으로 시작할수 없다며 한숨만 내쉬신다. 



몇일뒤 아버지가 통장을 건내신다. 



그만 포기하고 올라올것 같지않다며 이게 마지막 전부라며 건내주신다.



든든히 밀어주시겠다는 말씀에 마음이 한없이 기뻤지만 한편 한없이 두려워 지는 형언할수 없는 감정에 기복이 올라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돈이 있으셨던지.. 아끼고 모으니 되더라 하시며 아버지 예전 한대잠 자던 시절이 지금 내 모습하고 똑같다시며 막걸리 한모금을 들이키신다.



일억이라는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항상 긴장하며 사셨던 아버님께 한없이 죄송했다.



흑산도에서도 하루 하루 노가다를 하시며 싫은 소리 다 들어가며 일만 하셨다. 

지금은 야탑터미널에서 들어오는 차들 청소를 하고 계시다.



백만원이 안되는 돈을 버시려 새벽 4시부터 일터로 향하신다. 저녁 8시가 넘어 끝나는 일과를 힘들게 일하신다.



점심이라고 싸가신 도시락...밥한덩이에 반찬이라곤 치즈 한조각으로 점심을 드셨단다.



일하고 계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 스스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시작된 꿈을 현실로 바뀌는 순간은 이렇게 다가왔다.



병원에서 책이라면 일년에 한 두권 읽는 내가..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었다.

비행기 한대 없이 항공사를 세웠고 누구나 짜릿한 가격으로 비행기를 탈수 있도록 만든 회사..

이스타 항공 이상직 회장님에 "촌놈 하늘늘 날다" 라는 책을 읽으며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에 위대함을 느꼈다.

많은 부분 공감이 됬고 정말 많이

위안이 됬다. 



병원.앞 흡연장소에서 미래를 걱정하며 한없이 흘러내렸던 좌절과 고통에 눈물이 

오늘은 한없는 기쁨과 말할수 없는 희열에 눈물이 눈가에 맺힌다.



그동안 2년에 세월을 나는 정작 중요한 가족들의 희생을 뒷전에 두고 살았던게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인가 희망을 가지고 그 궤도에 오르겠노라 너무 힘들기만한 싸움이었다. 



이젠 집짓기만 몰두하자. 



어떤 모험이 기다릴지 궁금하고 벌써 집짓고 난 후가 걱정이된다...

공허함이랄까....



8시가 넘은 저녁.. 나는 항로페리(화물선)에 집수리, 집짓기 공구를 한차 가득 싣고 격전지인

흑산도를 향해 가고 있다.



나에 집짓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